섹스 한 번으로 알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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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섹스가 연애의 종착역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섹스를 아껴둬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섹스 한 번 안 하고 연애를 시작하는 건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한다! 6명의 여자가 말하는 ‘첫 섹스가 그에 관해 말해주는 진실’ 6가지.

1️⃣ 섹스를 하기 전에 씻는 남자인가?

​3년 전쯤이었나. 술집에서 내 번호를 따간 그와 세 번째 데이트에 모텔로 향했다. 술을 적잖이 마신 뒤 분위기가 한껏 달뜬 상황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포옹도 했다. 그는 누가 봐도 잘생긴 남자였고, 분명 나는 그와 매우 하고 싶었다. 그런데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그는 옷을 훌러덩 벗더니 단 1초의 애무도 없이 바로 삽입하려 드는 게 아닌가? 콘돔도 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샤워는커녕 손도 씻지 않은 상태였다. 섹스 후에 질염으로 늘 고생하는 내게 청결은 0순위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방에 들어서자마자 문을 쾅 닫고 남자가 여자를 벽으로 밀어붙여 키스하면서 그대로 침대로 골인하는 섹스의 장면은 지나치게 미화된 것이다. 본격적으로 섹스하려면 이도 닦고 샤워도 하고 가끔은 몰래 털 정리도 해야 한다. 나는 그에게 좋은 말로 먼저 씻자고 제안했지만 이미 말이 통하지 않는 상태였다. “왜 꼭 씻어야 해? 그냥 하면 안 돼?” 그 순간 그는 정말이지 발정난 개 같았다. 너무 화가 난 나는 옷을 입고 방을 쌩 나와버렸다. 잠시 후 그로부터 “진짜 미안해… 내가 너무 흥분해서…”라는 문자가 왔지만 그것마저 그를 한층 찌질하게 만들 뿐이었다. 나는 평소 섹스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스킨십을 굳이 막지 않는 편이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종종 원나이트 스탠드를 즐긴다. 그러나 즉흥적인 섹스에 열려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것에 열려 있는 건 아니다. 특히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종류의 세균에는 말이다. -김예솔(가명, 24세)

2️⃣ 전희를 즐기는 남자인가?

​그날도 그와 자고 싶은 마음을 짐짓 모른 체하며 시시덕거리면서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와 알고 지낸 지는 3년째. 여느 때처럼 우리는 사소한 주제로 서로를 놀려댔고, 그날의 주제는 내 가슴 사이즈였다. ‘가슴이 접히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다 말고 그는 “접힐 부분이 있기는 하니?”라고 짓궂은 농담을 던졌고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그러나 약간의 도발을 담아) “그렇게까지 작진 않거든? 보여줄 수도 없고…”라고 응수했다. 술집을 나와 우리는 그의 집에서 와인을 좀 더 마시기 위해 어두운 주택가를 함께 걸었다. 강남의 골목에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고바위가 많지만, 우리의 대화 사이사이에 정적이 자주 흘렀던 건 단순히 오르막길이 힘들어서는 아니었다. 우리는 기어코 화이트 와인을 한 병 더 땄고, 그다음부터 이어지는 대화 내용은 아무래도 좋았다. 작은 주광색 스탠드와 초 하나를 켜둔 방, 소반에는 어쩌면 우리의 속마음만큼이나 투명하게 비치는 와인 잔 한 쌍을 둔 채였다. 나는 사과를 깎느라 칼을 든 손에 힘을 줄 때 그의 엄지손가락이 휘어지는 각도를 숨죽이며 관찰하고 있었다. 문득 손을 멈추고 그는 물었다. “근데 아까 너 가슴 보여준다고 하지 않았니? 지금 보여줄 수 있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당황했지만, 쿨한 태도를 유지하려 애쓰면서 입고 있던 티셔츠의 목 부분을 앞으로 늘인 채 고개를 살짝 왼쪽으로 기울여 보였다. “되게… 예쁘게 생겼네.” 그러고는 잠시 정적. 그다음 순간에 우리는 “정수리에서는 꼬순내가 나”라며 서로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고 소설 속에 나오는 것처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키스하기 시작했다. 티셔츠를 벗길 때쯤에는 그와 알고 지낸 3년의 시간이 전부 이 첫 섹스를 위한 전희처럼 느껴졌다. 앞으로의 좋은 섹스를 보장하는 전희란 그런 것이다. 언제 달아올랐는지 모르게 이미 끓고 있는 것, 지금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지각도 없이 어느샌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에게 달려드는 것. -박초롬(가명, 32세)

3️⃣ 속궁합이 잘 맞는가?

​물리적인 의미에서 ‘속궁합’은 분명 존재한다. 속궁합은 첫 섹스, 첫 삽입의 순간에 결정되며, 첫 삽입의 기억은 그다음 섹스를 할 때마다 두고두고 떠오른다. 내게는 ‘속궁합’ 하면 떠오르는 구 남친이 한 명 있다. 사실 그와의 섹스를 처음부터 기대한 건 아니었다. 키스할 때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츄릅츄릅’ 느낌? 어느 날은 그의 집에서 함께 영화를 보기로 했다. 별달리 섹스에 대한 생각은 없었지만, 그의 집에서 키스에 관한 백과사전쯤 돼 보이는 두꺼운 버건디색 양장본을 발견하고 말았다. 나는 내가 그에게 평소 키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부러 나를 꼬시기 위해 그 자리에 올려둔 것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그런 그가 귀엽다고 생각했고, 어느새 우리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서로의 몸을 더듬고 있었다. 그가 속옷을 벗은 순간, 나는 그의 어여쁜 그곳을 보고 나지막이 감탄사를 뱉고 말았다. 살짝 위쪽으로 휜 형태의,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이상적인 굵기와 길이. 마침내 그가 삽입했을 때 ‘올 것이 왔다’는 짜릿함마저 있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무대에 등장한 참가자가 단 한 소절을 불렀을 뿐인데 모든 심사위원의 의자가 일제히 돌아가는 순간 같았달까? 물론 첫 섹스에 대한 기억은 늘 미화되기 마련이고, 그 간질간질한 느낌을 더 큰 흥분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애무의 스킬과 흥분의 정도, 애정을 떼어놓고 생각해도 그와의 속궁합은 최고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알고 보니 너무 무르기만 한 그의 성격 때문에 오래 사귀지는 않았지만, 그와의 관계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붙들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섹스였다. -서유진(가명, 23세)

4️⃣ 먼저 오럴을 해주는 편인가?

​데이팅 앱을 통해 알게 된 그와는 가벼운 마음으로 만났다. 오랜 연애를 청산한 뒤 한동안은 연애할 생각도 없었고 그저 즐기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보다 8살이나 어린 그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품 안에서 휴대용 재떨이를 꺼내 다 피우고 난 꽁초를 가지런히 넣어두는 모습을 보고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만난 건 4월의 시청역이었고 함께 <데이비드 호크니전>을 봤다. 그는 호크니가 관람객의 시선에서 능동적으로 소통하려는 점이 좋아 보인다고 말했다. 미술관을 나온 우리는 늦게까지 술을 마셨고, 택시 안에서 그는 내게 “키스해도 돼?”라고 물어왔다. 키스는 좋았고, 그가 다음에 물은 건 “오늘 밤에 나랑 같이 있어줄래?”였다. 매사 나의 의사를 정확하게 묻는 세심함이 좋았다. 무엇보다 그는 오럴을 해줄 줄 아는 남자였다. 뒤집어질 정도로 스킬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 풋풋함이 더 좋았다. 급기야 그는 “내 얼굴에 앉아볼래?”라고 물었다. 분명 다 아는 단어의 조합인데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고 보니 말 그대로 얼굴에 앉으라는 뜻이었고, 그건 ‘내가 너한테 본격적으로 오럴을 해주고 싶어’라는 의미였다. 비록 자세를 오래 유지하기엔 허벅지가 좀 아팠지만, 그 예쁜 얼굴에 앉는 쾌감이라니. 전에 4년 넘게 만난 남자 친구는 한 번도 오럴을 해준 적이 없었다. 다른 남자들은 “결혼할 여자한테만 해줄 거야”라며 짜게 굴었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이 친구와 반년째 연애 중이다. 섹스를 거듭하며 알게 된 건 그가 호기심도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은 남자라는 사실이다.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남자의 목을 졸라도 보고 엉덩이도 때려보게 됐다. 스무 살 이래로 연애를 쉰 적이 거의 없지만, 그처럼 나를 안달나게 하는 남자는 만나보지 못했다. -이한솔(가명, 30세)

5️⃣ 섹스 도중 어떤 말을 하는가?

​그는 누가 봐도 ‘인싸’ 그 자체였다. 파티에서 만난 첫날, 모두와 하하호호 밝은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주변의 취한 친구들을 업어 택시에 실어주는 모습을 보고 참 예의 바르며 사회성 좋은 청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와의 첫 섹스 직후, 나는 그가 소시오패스는 아닌지 잠시 의심했다. 그는 섹스 도중 끊임없이 말을 하는 타입이었는데, 90%는 ‘몸평’이었다. “허리가 생각보다 가는데?”, “왜 이렇게 말랐어. 부딪칠 때 아프다” 같은 말은 감미로운 칭찬이라기보다 남자들끼리 지난밤 섹스에 대해 품평할 때의 말투였다. 체위를 바꿀 때마다 강조되는 신체 부위에 대해 계속해서 코멘트하는 통에 무드가 이어질 틈이 없었다. 후배위를 할 때는 “엉덩이에 살 좀 쪄야겠다”(그게 내 콤플렉스인지는 물어본 적 없으니 몰랐겠지?), 여성 상위에서는 “이렇게 보니 가슴 크네” 같은 대사가 빠지지 않았다. 그는 그걸 ‘더티 토크’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흥분되기보다 그냥 ‘더럽다’는 기분만 들었다. 어쩌다 보니 그와는 몇 달 정도 연애를 했다. 섹스하는 횟수가 늘수록 그의 어록은 쌓여만 갔다. 펠라티오하는 내게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야동에 나오는 여자처럼 야하게 해봐”라며 가르치려 들었다. 자신감 없는 섹스가 즐거울 리 없었다. 그는 데이트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리가 휘어서 짧은 치마를 입으면 안 예쁘다”부터 “그렇게 밤늦게 돌아다니면 험한 일 당해도 싸다”라는 식의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다행히 얼마 못 가 그와의 건강하지 않은 관계를 정리하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의 섹스와 연애는 그의 첫인상에서 결정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그는 예의 바른 게 아니라 ‘위계질서에 충실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한 살이라도 나이가 많은 남성에게 바로 “형님” 하면서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은 여성과의 섹스에서 억눌린 마음을 배설할 확률이 높다는 걸, 그를 통해 알게 됐다. 한 인간으로서 그의 모습과 남자 친구로서의 모습이 소름 끼칠 정도로 상반됐다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그는 참으로 일관되게 구린 남자였다. -강소현(가명, 26세)

6️⃣ 자신의 성적 취향을 강요하는가?

​클럽에서 만난 그는 구석에서 조용히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자에게 들이대기 바쁜 그의 친구들과는 대조적이었다. 키도 훤칠했고, 조명이 번쩍일 때마다 볼캡 아래로 드러나는 얼굴은 연예인 뺨칠 정도였다. 내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걸어 번호를 주고받았다. 두 번의 데이트를 하는 동안 그는 스킨십에 매우 조심스러웠다. 대신 내가 지나가는 말로 보고 싶다고 했던 영화를 기억했다가 몰래 예매해놓거나 저녁을 한 번 먹어도 뻔하지 않은 식당을 고르는 센스가 있는 남자였다. 그가 “내가 너를 좋아하는 만큼 너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라고 말했을 때는 지난 5년간 연애를 하지 않은 나도 마음이 흔들릴 정도였다. 세 번째 만남에서 새벽 1시가 넘어가자 그는 “우리 집에서 술 더 마실래?”라고 물어왔다. 섹스의 ‘ㅅ’자도 꺼내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자자’는 얘기였다. ‘섹스하면 1일’이라고 생각하는 내겐 좀 이른가 싶었지만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아 알겠다고 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애무 중간중간 오럴을 해달라는 듯 내 머리를 아래쪽으로 힘주어 미는 그의 행동이 반복되자 기분이 쎄해졌다. 그가 절정에 이를 때쯤에는 나의 불만도 절정에 달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그는 ‘사정을 입안에 해야 하는 남자’였던 것이다. 백번 양보해 그걸 좋아하는 여자도 있겠지만, 다짜고짜 페니스를 내 입에 욱여 넣기 전에 먼저 물어봐야 할 것 아닌가? 섹스가 끝난 뒤, 나는 그와 더 대화해볼 필요도 없다고 판단했고 집에 가는 길에 그와 연결된 메신저와 SNS 계정을 모조리 차단했다. 사람은 겪어봐야 아는 법이다. 내가 ‘선섹스후연애’주의자가 된 이유다. -이민희(가명, 2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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