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섹스 취향, 어디까지 받아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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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발이 너무 좋아.” “속옷 벗어놓고 가면 안 돼?” 침대 위에서 기습해 오는 연인의 은밀하고 독특한 요구에 당황한 적이 있는지? ‘수용 가능한 선’을 넘나드는 파트너의 성적 취향, 어디까지 존중해야 할까?

별걸 다 좋아하는 남자

​남자의 독특한 성적 취향에 대한 호기심과 의문은 지인이 말해준 ‘데이팅 앱 만남 후기’에서 시작됐다. “데이팅 앱에서 만난 어떤 남자가 유독 사진 속 제 신발이 예쁘다느니 발이 귀엽다느니 칭찬을 하더라고요. 그냥 취향이려니 했는데 나중에 그를 직접 만났을때 다짜고짜 저한테 ‘왜 그 신발 안 신고 나왔냐’고 푸념하는 거예요. 생각해보니 그가 ‘만날 때 사진에서 신었던 그 신발을 신고 나오라’고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더군요. 그 남자는 왜 굳이 처음 만나는 여자한테 노골적으로 발 타령을 한 걸까요? 기분 나빠서 바로 연락을 끊었어요.”

이성의 발에 성적 흥분을 느끼는 ‘발 페티시’는 대다수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흔한 취향이다. 미국의 섹스 테라피스트 리즈 파웰 박사는 “충격적일 정도로 흔히 접할 수 있는 페티시”라고 말한다. “여성의 육체를 숭배하는 남성들이 종종 ‘발’에 집착합니다. 파트너의 발을 마사지하거나 애무하며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는 거죠. 또 다른 부류는 발 냄새에 흥분하기도 하고요. 어쨌든 생각보다 꽤 많은 남자들이 여자의 발을 신성하게 여기고 있어요.”

불교에선 만 명의 인간이 있으면 만 가지의 세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만 명의 남자 안에, 만 가지의 성적 취향이 있지 않겠는가. 내친김에 주변 사람들의 성생활을 더 파고들었다. 20대부터 40대, 싱글, 기혼, 보수적인 순결파부터 섹스를 양껏 즐기는 분방한 친구까지 불특정 다수를 ‘랜덤’으로 골라 들어본 남자들의 독특한 취향은 생각보다 파격적이고, 심지어 흔했다.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전해온 그 야화 속엔 여자 친구의 발가락에 매니큐어 칠하기를 좋아하는 귀여운 남자도 있었지만, 약혼녀에게 “자기 앞에서 대변을 봐달라”고 사정한 회사원, 아내가 버린 생리대를 꺼내 냄새를 맡다가 걸려 이혼을 당한 의사도 있었다. 이들은 도대체 왜 이런 기상천외한 쾌락을 좇는 걸까?

그게 왜 좋아?

​‘kink’는 특이한 성적 취향을 아우르는 신조어다. 온라인 백과사전에선 ‘전통적이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성적 행위를 포괄하는 용어’로 정의한다. 당신이 남성의 팔에 솟아오른 힘줄을 보며 섹시하다고 느끼는 것, 가학적 성향이 있는 남자가 파트너에게 ‘강아지 흉내’를 요구하는 것도 일종의 ‘kink’라고 볼 수 있다. 네덜란드의 심리학 매거진 편집자이자 언론인 다그마 반 데어 노이트는 저서 <인간의 섹스는 왜 펭귄을 가장 닮았을까>에서 한 사람의 성적 취향이 형성되는 과정을 학습 메커니즘에서 찾는다. 그녀는 양과 염소의 어미를 바꿔 양육한 경우, 양은 염소에게, 염소는 양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실험 결과를 통해 양육자가 수컷의 성적 취향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즉 성적 취향이 인생의 초기 단계에서 일어나는 성적 경험을 통해 결정된다는 뜻. 실제로 여성의 방귀에 흥분하는 한 남자는 자신이 16세 때 짝사랑했던 소녀의 방귀 소리를 듣고 성적인 상상에 빠진 이후 방귀를 섹스와 연관시키는 습성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초기의 성적 경험 당시 감각을 자극했던 요인들이 뇌에 영향을 주고, 이 작용이 반복되면서 성 취향이 형성된 거죠”라고 노이트 박사는 말한다.

‘kink’가 강도와 종류를 막론하고 모든 성적 취향을 아우르는 말이라면 ‘페티시(페티시즘)’는 좀 더 구체적인 증상이다. 신체 일부 또는 특정 사물을 통해 성적인 애착, 쾌감을 얻는 도착 현상의 일종으로 주로 하이힐·브래지어·팬티·스타킹 등의 의류, 고무·가죽 등 특정 소재, 신체 일부를 만지거나 문지르거나 냄새를 맡으며 흥분한다. 전문가들은 이 증상이 주로 청소년기에 형성되며, 만성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성적 취향의 끝에는 ‘성적 도착증’이 있다. 충동·행위의 정도가 사회 적응, 인간관계를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는 상태를 뜻한다. 우리가 뉴스에서 발견하는 변태적 성범죄자들이 ‘도착증’에 해당하며, 노출증, 소아성애증, 관음증, 접촉도착증, 성적 피학·가학증·이성 복장 착용증 등 30여 가지의 종류로 나뉜다.

그렇다면 취향과 도착을 결정하는 기준은 뭘까? 구로 연세 봄 정신과의 박종석 원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상대방에게 불쾌감과 혐오감을 주는지, 그 행위가 사회적·법적 물의를 일으키는지 등의 여부, 또한 파트너에게 자신의 취향을 ‘제안’하는 대신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혹은 오로지 그 행위에만 집착하는지 여부가 취향과 도착증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본인이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을 만큼 괴로움이나 죄책감을 느끼거나 정상적인 성적 자극이나 성행위로는 만족을 얻지 못하는 경우, 6개월 이상 반복적으로 비정상적인 성적 행위, 그 행위와 관련된 성적 판타지나 충동을 보이며 집착하고 행동에 옮기는 경우라면 전문가의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다. 당신이(드물지만 여성에게도 도착증이 있다!) 혹은 당신의 파트너가 이에 해당한다면 조치가 시급하다는 뜻. 단, 평소엔 정상적인 범주에서 성적 행동으로 만족을 얻는 사람이 가끔 성적 일탈을 위한 성도착적 행동을 하거나, 성적 판타지에 도착적인 내용이 포함된 정도는 ‘성 도착증’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의 요구에 ‘반응’하는 법

​이미 답을 알고 있겠지만, 그의 요구에 응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당신의 뜻에 달렸다. 좋은 연인이 되기 위해 의지와 상관없이 그가 원하는 대로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kink’의 세계는 넓고 무한해서(?) 범법이 아닌 이상 행위자와 상대의 의사가 판단의 기준이 된다. 옳고 그름을 가르는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는 뜻.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의 호쾌한 ‘섹스 홀릭’, 사만다를 비난하진 않지 않나? 그 사만다만큼이나 분방한 성생활을 즐기는 패션 디자이너 오혜란(가명, 36세) 씨는 ‘kink’ 가 소통의 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뺨도 맞아보고 욕을 하거나 들어보기도 했어요. 발 좋다는 남자 때문에 각종 발 세정제도 섭렵했죠. 어떤 남자는 스타킹 촉감이 너무 좋다며 그것만 입고 자면 안 되냐고 조르더라고요. 제가 상대의 요구를 거부하지 않는 기준은 ‘호기심’이에요. 그의 욕구나 시선에 맞춰 몸으로 나누는 대화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물론 자존심이나 자존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 같으면 가차없이 ‘No’ 해요. 하다가 기분이 상하면 바로 중단하고요. 그래도 계속 요구하면 헤어졌죠.”

당신이 어떤 ‘kink’를 마주하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결정하기 전에 알아둬야 할 점이 있다. 파트너에게 자신의 은밀한 취향을 고백한 남자가 그 이야기를 ‘쉽게’ 꺼낸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섹스&관계 코치 찰리 글릭먼 박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 ‘취향’에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더라도, 우선 ‘솔직하게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거나 혹은 (고마움까지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면)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취향을 인정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가 자신의 특이한 성적 취향을 누군가에게 말했을 때 상대가 불편해하거나 당황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용기를 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죠”라고 말한다. 덧붙여 ‘역겹다’거나, 면전에서 크게 웃거나, 비난 혹은 타박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귀띔한다. 만약 자신도 모르게 당혹감과 흔들리는 눈동자를 숨기지 못했다면, 처음 접하는 세계라 익숙하지 않다고 곧바로 이해를 구하는 것도 좋다(그가 당신의 소중한 남자 친구라면 말이다).

머뭇거리거나 흐지부지 넘어가는 건 당신과 그 모두에게 도움이 안 되는 반응이다. 박종석 원장은 “네가 누군가와 이 취향을 공유하는 건 존중하지만, 내겐 좀 어려운 일이다”와 같은 말로 확실한 거절 의사를 밝히라고 조언한다. “섹스는 한 사람의 욕구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예의와 존중, 합의를 기반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당신의 연인이 다른 면에서 아무리 장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강요한다면 그와의 만남을 지속해야 할지 고민해보세요. 그 남자에게 당신이 존중해야 할 객체가 아니라 성적인 욕구 충족을 위한 대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섹스는 두 사람 모두 편안하고 즐거워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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